데이트성폭력증거 '말'로 거절하지 않아도 거절이 되는 이유
- 형사
- 피해자
작성일2025-04-03
남자친구란 이유로
암묵적으로 허용되는 데이트폭력,
이젠 그냥 넘어갈 수 없습니다.
안녕하세요 성범죄피해자변호사
법률사무소 프로 대표변호사 이규완입니다.
성관계는 두 사람이 서로 합의했을 때 이루어져야 합니다.
남편이 아내를 간음해도 죄가 된다는 것, 모르는 분들이 많으시더군요.
남자친구인데 당연한 거 아니야?
남편인데 당연한 거 아니야?
아뇨, 성관계는 여성으로서 '내 남자'에게 해 주어야 하는 의무가 아닙니다.
사랑하는 사람이기에 '함께' 누리는 권리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사이이니 당연하다'라는 명분 하에 자행되고 있는 수많은 강압적 성관계들.
이것이 엄연한 데이트 성폭력이자 범죄 행위라는 것.
지금부터 명명백백히 밝혀드립니다.
어제의 연인이 오늘의 성범죄자가 될 수 있다.
ⓒ MBC 뉴스
법원이 주목하는 것은 '연인 사이'가 아닙니다.
연인 사이라 하더라도 성범죄가 성립할 수 있다.
다수의 법원 판례들이 위 내용을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성폭력이란 '폭행 또는 협박을 수단으로 삼아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여 이루어진 성적 행위'를 의미하죠.
서로 사랑을 맹세한 사이라고 해도 이 잣대를 피해 갈 순 없습니다.
실제로 제가 담당했던 사건을 몇 가지 예로 들어 드리겠습니다.
의뢰인과 술을 마신 후 의뢰인이 제대로 저항하지 못하자 '사귀는 사이에 이 정도는 당연하다'라며 강제로 관계를 맺었던 남자친구.
연인 사이라 할지라도 거부 의사가 있었다면 강간죄가 성립한단 판결을 받아내었죠.
소극적인 성격 탓에 거절을 똑바로 하지 못했던 의뢰인.
관계를 원하지 않았지만 남자친구가 계속 종용한 탓에 어쩔 수 없이 잠자리를 가졌다고 하셨죠.
남자친구가 적극적 폭행을 행사한 것은 아니었으나 의뢰인의 암묵적인 거부 의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판단.
이 역시 강간죄 처벌이 내려졌습니다.
▶강간·강제추행 법정형 강간죄 법정형에는 벌금형이 없습니다. 죄질이 무겁다 판단, 오로지 유기징역만으로 다스려지는 중범죄이죠. 3년 이상의 징역형이 기본, 피해자에게 정신적·신체적 심각한 피해가 있었다면 가중 처벌도 가능합니다. 관계까지는 맺지 않았지만 피해자에게 강압적으로 성적 추행을 했다면 강제 추행에 해당합니다.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을 내릴 수 있습니다. |
동의하지 않았으면 동의가 아니다.
부끄러운 척, 처음은 거절해 보는 것?
데이트 성폭력으로 저를 찾아오신 의뢰인분들께서 걱정하시는 부분이 있는데요.
'아무래도 남자친구이다 보니... 제가 강하게 거절하지 못했어요. 그래도 성폭력 처벌이 가능한가요?'
바로, '강하게 저항하지 않았다.'라는 것이죠. 데이트성폭력증거가 없을까봐 걱정하시는 겁니다.
이럴 때 저는 명시적 동의와 묵시적 동의의 차이를 설명드리는데요.
▶명시적 동의 vs 묵시적 동의
언어적으로, 또는 비언어적 표현(행동)으로 성관계를 원한다고 밝힌 경우. ex) 하고 싶다, 좋다 등
관계를 거부하지 않았거나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않은 경우. |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묵시적 동의'에서 '저항하지 못 한 경우'인데요.
분위기상 강하게 거절 의사를 밝히지 못해 저항하지 않은 것처럼, 묵시적으로 동의한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아니었던 거죠.
남자친구가 자신이 애인이라는 입지를 악용하거나, 분위기를 강압적으로 주도해 피해자가 의사 표명을 하지 못하도록 했을 수도 있습니다.
이 점을 조리 있게 설명만 할 수 있다면, 법원은 최근 묵시적 동의를 동의로 간주하지 않는 판결을 내리고 있죠.
긴장하거나 공포에 질려 저항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충분히 데이트 성폭력 및 강간죄가 성립할 수 있다는 소리입니다.
'하지 마'라는 말을 그저 앙탈, 부끄러워 거절하는 표현으로 받아들이는 일은 법원에선 잘 일어나지 않거든요.
꼭 말로 거절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경직, 울음, 도망치려는 행동 역시 충분한 거절의 의미이자 데이트성폭력증거가 됩니다.
그래서 법원은 '여기'에 주목합니다.
피해자의 한마디에 힘을 실을 수 있는 힘
그럼, 이 '소극적 거절'이 법원에서 어떻게 힘을 가질 수 있을까요?
CCTV 하나 없는 밀실에서 일어난 성폭력, 마땅히 데이트성폭력증거로 내놓을 만한 게 없을 수도 있는데요.
이 특성을 모두가 알기에 법원은 피해자 진술에 힘을 실어 줍니다.
여기에서 저는, 법원이 이미 힘을 실은 피해자 진술에 두 배, 세 배로 힘을 싣는 전략을 활용하죠.
사귄 지 얼마 안 된 남자친구의 강압으로 성관계를 맺었던 사건을 맡은 적이 있었습니다.
의뢰인은 자신이 제대로 거절하지 못했다며 데이트 성폭력을 입증하기 어려울 것 같다 하셨지만, 제 의견은 달랐습니다.
의뢰인의 이야기를 차분히 듣다 보니, '묵시적 동의'의 허점을 찌를 만한 부분이 보였거든요.
(전) 남자친구는 의뢰인이 별다른 거절의 멘트를 언급하지 않았으니 묵시적으로 동의했다고 이야기했지만, 실상은 달랐습니다.
관계 중 의뢰인이 울음을 터뜨렸더군요.
그제야 가해자는 부랴부랴 '좋아서 운 거다.'라며 말을 바꾸었지만,
'울음'은 명백한 비언어적 거절의 표시임을 저는 강력히 피력했습니다.
법원은 이것을 인정, 가해자에게 강간죄 판결을 내려주었죠.
법원은 목소리 큰 자가 이기는 곳이 아닙니다.
남자친구(혹은 이제는 전 남자친구가 된 가해자...)가 아무리 '동의한 것 아니냐.', '너도 거절하지 않았다.'라고 주장한들 소용없습니다.
피해자의 진술이 처음부터 끝까지 논리적이고, 일관되었다면 더 무게를 가지는 쪽은 우리이니까요.
하지만 심리적으로 위축되어 있거나 충격을 받은 피해자의 입장에선 증언을 함에 있어 혼돈이 올 수도 있죠.
수사 과정에서 이미 지친 몸과 마음에 횡설수설하는 일도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데이트성폭력증거를 마련하고, 다음과 같은 절차를 저와 함께 밟는다면 이런 일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데요.
✔️ 사전 진술을 먼저 정리
사건 당시의 상황이나 피해자의 감정을 구체적으로 기록해 기억에 구멍이 없도록 보완.
✔️ 진술 번복 방지
피해자가 가해자의 압박이나 이전의 정에 이끌려 진술을 번복할 가능성을 미리 차단.
더불어 저는 피해 직후 피해자가 주변인에게 피해를 호소했거나, 충격을 받았음을 입증할 수 있는 데이트성폭력증거를 확보합니다.
피해자는 일관된 진술을 하고, 저는 거기에 화룡점정을 찍는 것입니다.
글을 마무리하며...
데이트성폭력 피해자들이 또 하나 힘들어하는 것은 한때 사랑했던 사람과 법정에서 가해자와 피해자로 마주해야 한단 것입니다.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만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희망하신다면 비공개 증언, 가림막 설치, 영상 증언 등 가해자와 마주하지 않고 밟을 수 있는 절차들이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한때의 사랑' 때문에 내가 당한 데이트성폭력이 정당화되는 세상이 없길 바라는 마음으로 늘 힘씁니다.
피해자의 작은 몸짓이, 거절의 목소리가 묵살되는 일이 없도록, 제가 늘 함께하겠습니다.
| 성범죄피해자변호사 이규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