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민사합의금 10배 받아낸 이야기
돈 조금 내면 끝이라는 게
말이 되나요?
안녕하세요 성범죄피해자변호사
법률사무소 프로 대표변호사 이규완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성추행·성희롱으로 실형이 내려지는 경우는 드뭅니다.
강간 등의 성폭력 역시 가해자가 변호사만 잘 구하면
집행유예가 내려지기도 하는 게 현실이에요.
심지어 '어차피 처벌 안 받으니까 합의금 받고 끝내자.'라며
피해자가 합의 종용을 당하는 일도 부지기수죠.
어차피 처벌 못받으니까...
합의금이라도 대충 받고 끝내는 게 합리적인 걸까요?
아니요?
성범죄민사합의금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 말씀 한 번 드려보겠습니다.
벌금? 합의금? 손해배상? 정확히 뭐가 다른가요?
ⓒ 네이버 지식백과
벌금은 나랏돈이 됩니다.
그래서 가해자가 벌금형을 받는 게 틀렸다는 이야기는 아니에요.
하지만 여기서 하나 생각해 보아야 할 게 있습니다.
가해자가 벌금형을 받고 끝나면, 피해자는요?
벌금을 낸다고 해서 당한 사람에게 돌아오는 금전적 보상은 '하나도' 없습니다.
다, 국가에 귀속되는 금액일 뿐이죠.
저는 성범죄로 인해 신체적·정신적 피해를 입은 피해자에게도
마땅한 금전적 보상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나가다 실수로 남의 물건을 부숴도 배상하는 게 마땅한 것인데, 성범죄라고 다를까요?
피해자 보고 '돈 뜯어내려 한다.'라며 몰아가는 사회가 이상하다고 생각합니다.
피해를 받았으면, 당연히 보상 받아야하는 거 아닌가요?
▶벌금 vs 합의금 vs 손해배상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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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하자면, 합의금과 손해배상금이 피해자가 실질적으로 받아낼 수 있는 돈이란 말입니다.
그럼 둘 중 어떤 걸 받아내야 하느냐?
이게 바로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부분인데요.
둘 중 더 큰 금액을 받아내야 하지만,
자칫 합의를 잘못했다간 손해배상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생길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합니다.
성범죄민사합의금, 거절해야 할 때 vs 받아야 할 때
금전 수령은 '우리가' 선택하는 겁니다.
'지금 아니면 못 받으니 합의금이라도 받아라.'
가해자 측 변호사가 피해자를 종용할 때 보통 이런 투로 말을 해요.
은근하게 압박을 주는 거죠. 이 정도에 합의하는 게 좋을 거라고.
저는 예의 갖춰서 거절 하지만, 속으론 이런 생각을 합니다.
'웃기는 소리 하지 말라'고요.
의뢰인 K 씨의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약 2년간 직장 내에서 크고작은 성희롱·성추행을 지속적으로 당했고, 견디다 못해 퇴사 후 저를 찾아오셨습니다.
직장 내 신고를 해 보았지만 취해지는 조치는 없었다고 해요.
편찮으신 부모님의 병원비가 걸려 내내 참아오시다 치료가 끝난 후에야 퇴사를 선언했고, 그 즉시 가해자인 부장을 형사 고발하셨어요.
고소장을 받은 즉시 변호사를 선임한 부장은 고작 5백만 원의 합의금을 제시하며 고소 취하를 요구했습니다.
'좁은 업계인데 소문나 봤자 K 씨에게만 불리하다.'라는 말을 하면서요.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 저를 찾아오셨습니다.
저는 단박에 합의금을 거절했죠.
왜?
범죄 증거를 수두룩하게 찾을 수 있었거든요.
▶K 씨의 피해를 입증하기 위해 찾은 증거들 ✔️ 업무 외 시간 보낸 성적인 농담 등이 담긴 카카오톡 대화 내역 ✔️ 거부 의사를 밝혔음에도 지속적으로 의뢰인을 만졌던 술자리 대화 녹음 ✔️ 강제로 입맞춤을 시도한 장면을 담은 사무실 CCTV 영상 ✔️ 이를 목격하거나 비슷한 피해를 당한 동료 직원들의 진술 ✔️ 직장 내 신고 기록 |
고작 5백만 원의 성범죄민사합의금을 받고 사건을 마무리하기엔 제 손에 쥔 무기가 너무 많았달까요.
괘씸죄까지 붙여서 형사 건과 함께 민사 소송도 제기했고,
모은 증거들을 모두 제출하며 합의금을 거절하겠단 의사를 알렸죠.
이에 마음이 급해진 가해자 측은 기존 제시한 5백만 원의 10배에 달하는
5천만 원을 합의금으로 제시했습니다.
여기서 거절할지 수령할지, 그 선택은 오로지 의뢰인분께 맡겼습니다.
민사까지 끌어갈 경우 약 1천만 원의 금액을 더 받아내 볼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그 긴 싸움을 감당하는 것도 엄청난 스트레스를 동반할 수 있으니까요.
결론은? 5천만 원의 합의금은 수령하기로 결정하고
가해자는 5백만 원의 벌금형을 받고 형사 재판이 마무리 되었습니다.
성범죄도 똑똑하게 전략을 세워야 한다

합의는 누군가 종용해서 하는 게 아닙니다.
정말 내가 '해도 되겠다.' 싶을 때 하는 것이죠.
괜히 합의했다가 법적 대응도 못한다?
피해를 보상받는 데 이렇게까지 전략을 짜야 한다는 게 가끔 어이가 없어요.
근데 어쩌겠어요?
가해자는 죽어라 자기 잘못 없다고 우겨대는데, 피해보상 제대로 받으려면 저희도 피터져라 싸워야죠.
형사 재판과 민사 소송, 그리고 합의금과 손해배상금 사이에서 고민하시는 분들을 위해 몇 가지 유의사항이 있습니다.
1. 합의한다면 조항을 잘 확인하세요.
처음부터 꽤 적절한 금액의 합의금을 제시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굳이 긴 싸움을 하고 싶지 않다면 합의금을 택하는 것도 방법이긴 한데, 조항은 꼭 잘 확인하셔야 합니다.
왜?
'추후 다른 법적 대응을 제기하지 않는다.'라는 조항이 포함되어 있을 확률이 높거든요.
추후 민사 소송을 제기하고 싶어졌는데 이 조항에 합의를 해버렸다면?
더 이상 할 수 있는 법적 조치가 없어집니다.
2. 민사는 꼭 형사 재판이 끝난 후 해야 한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아닙니다.
많은 변호사들이 '형사 판결이 확실해진 뒤에 민사 소송하세요.'라는 조언들을 하시는데요.
소신껏 말씀드리자면 꼭 그러실 필요는 없어요.
물론 사건의 분쟁이 심화되고 피해 입증이 난감한 경우라면 형사 판결문이 중요한 증거가 되니 기다려도 좋습니다.
하지만 어차피 피해 사실이 확정될 거라면? 굳이 피해자에게 더 긴 시간을 감내하게끔 할 필요가 없죠.
동시에 진행해도 충분히 형사 처벌받게끔 한 후 손해배상금 받아낼 수 있고,
아니면 민사를 활용해 합의금 상향 전략을 세워볼 수도 있거든요.
여러모로 피해자에게 유리하게 활용할 부분이 있으니 민형사 양방 전략을 고려해보시는 것도 좋습니다.
글을 마무리하며...
합의금, 손해배상금, 뭐가 됐든 금전적 보상을 받아낸다고 해서 피해자의 상처가 회복되는 건 아니죠.
근데 돈으로라도 복수하지 않는다면? 피해 사실과 억울한 마음에 피해자의 마음이 더욱 곪아갈 것임은 분명합니다.
내 피해를 공식적으로 인정받고, 다른 방식으로 사과를 받아내는 거라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성범죄, 없던 일로 만들어 드릴 수는 없지만 통쾌한 복수는 제가 대리해 드릴 수 있습니다.
복수 여부는 피해자의 선택이고 마음입니다.
그 선택을 존중하고 '더 잘' 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 드리는 것이 제가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것이죠.
| 성범죄피해자변호사 이규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