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피해자변호사가 생각하는 '피해자 합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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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해자
작성일2025-03-11

안녕하세요 성범죄피해자전문변호사
법률사무소 프로 대표변호사 이규완입니다.
며칠 전 만난 한 의뢰인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이전에 만난 변호사님은
그냥 빨리 합의하라고 하셔서 속상했어요.
제가 받은 피해가
그렇게 쉽게 합의하고 넘어갈 일인가요?
필요에 따라서는 빠르게 합의점을 찾는 것이
좋을 수도 있어요.
재판 과정이 그리 순탄치는 않으니까요.
근데 사건을 제대로 들여다보지도 않고 무작정 합의를 종용하는 게
과연 피해자를 변호하는 변호사로서 책임감 있는 태도일까요?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성범죄피해자만변호하는 저 이규완이,
‘합의’에 대해 한 말씀 드려볼게요.
합의하기 '전에' 고려해야 할 것

합의라는 것,
고려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란 말이죠.
답이 딱 정해져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사건 규모에 따라 합의보다 강력한 처벌이 꼭 필요한 경우도 있고,
의뢰인 상황에 따라 합의가 절실해질 때도 있다는 게 늘 문제입니다.
그러든 어쩌든, 피해자의 법률 대리인인 제 입장에서 합의를 고려할 때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것은 딱 하나밖에 없어요.
바로, 의뢰인의 미래.
와닿지 않으신다고요?
제가 겪었던 한 사례를 소개드릴게요.
30대 직장인이었던 의뢰인 A씨는 어느 날 회식 후 상사에게 끔찍한 일을 당했습니다.
술에 취한 의뢰인을 은밀한 곳으로 데려가 강제추행 했고, 거기서 끝났냐?
아뇨. 저항하는 의뢰인을 폭행까지 했어요.
사건 이후 A씨는 이 사실을 사측에 알렸으나,
사측은 역시나... 사건을 숨기기 급급했어요.
이 상황에서 머리 숙이고 사과를 해야 할 가해자는 합의금만 띡 내밀며,
고소해봐야 피차 피곤할 테니 받고 떨어지라는 식으로 나왔다고 해요.
'뭐 이런 일이 다 있어?' 싶죠?
생각보다 많습니다.

의뢰인이 처음 저를 찾아오셨을 땐,
이 뻔뻔하고 파렴치한 가해자를 어떻게든 강력하게 처벌받게 해달라고 거듭 강조하셨어요.
근데 시간이 갈수록 사건을 계속 상기하는 것도 엄청난 스트레스로 다가오고,
퇴사하면서 고정 수입도 사라지자 심리적으로도 엄청 흔들리기 시작했어요.
결국 이 사건 끌고 가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며 합의는 어떻냐고 먼저 넌지시 물어보시더라고요.
저는 고민도 안하고 분명하게 일러드렸습니다.
합의는 현실에 떠밀리듯 하기보다
할 때 하더라도 ‘제대로’ 하는 게 중요하다고요.
맞아요. 물론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합의가 실질적이고 긍정적인 선택이 될 수 있어요.
근데 여기서 문제는, 피해자들은 본인의 범죄피해가 어느 정도인지 모른다는 거에요.
짐작하더라도 추가적인 기회비용까지 계산하는 경우는 드물고요.
그렇기 때문에 성범죄피해자만변호 하는 사람으로서
제발 무작정 합의하지 말라고 당부 드리는 겁니다.
합의라고 다 같은 합의가 아닙니다

맞습니다.
합의라고 해서 다 같은 합의가 아니죠.
1억을 받던 10억을 받던 피해자가 받은 고통에 비해 적은 액수라고 생각한다면 후회가 남기 마련이에요.
후회가 남는다?
이건 제대로된 합의라고 볼 수 없겠죠.
그래서 저는 합의를 논하는 과정에서는 딱 한 가지만 생각해요.
의뢰인이 받은 피해와
미래에 추가적으로 발생할 피해에 대한
정확한 산정.
이 타이밍에 B씨 사례가 생각나네요.
피해 상황에 대해 정확히 인지를 하지 못해 하마터면 터무니없는 합의금으로 합의할 뻔했던 사건이죠.
B씨는 범죄를 당한 이후 직장에서도 가해자에 의한 사내 따돌림과 명예훼손을 당하며 이중고를 겪고 계셨어요.
이것 때문에 우울증 중증에 공황장애 진단까지 받고 병원도 다니고 계신 상태였죠.
사건을 점점 깊이 파고들면 들수록 B씨는 쉽지 않으셨던 것 같아요.
가해자가 제시한 2천 만원으로 그냥 합의하고 싶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근데 합의를 할 때 하더라도
받아낼 건 다 받아내는 게 인지상정 아니겠어요?
저는 가해자가 제시한 금액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금액인지 추가적인 조사를 통해 보여드렸습니다.
▶ 의뢰인의 피해금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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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만 봐도 느껴지시지 않나요?
가해자가 제시한 2천 만원이 얼마나 택도 없는 금액이었는지.
이렇게 상세하게 보여드리고 나서야 의뢰인은
하마터면 땅을 치고 후회할 뻔했다고 말씀 하시더라고요.

실제로 제가 많은 의뢰인분들을 만나다 보니,
재판을 진행하면 할수록 어쩔 수 없이 마음이 해이해지기 마련이더라고요.
정신적 스트레스와 현실적인 어려움을 함깨 겪는 게 만만치 않으니까요.
하지만 성범죄피해자만변호하는 저는 절대 그냥 합의하게 두지 않습니다.
강력한 처벌을 받게 하는 게 가장 확실한 복수 방법이지만,
만약 합의를 하기로 했다면 한 톨도 남기지 않고 다 받아내서 가해자한테 끔찍한 경제적인 고통을 안겨줘야죠.
더 강력한 복수를 원한다면?
성범죄, 바보같이 형사만 진행하면 끝일까요?
아니요.
난 피해보상금도 제대로 받고 처벌도 제대로 하고 싶어.
이런 굳건한 마음을 가진 분들을 위해 제가 해드리는 방법이 있어.
바로, 민사 소송으로 압박을 더하는 것이죠.

위에서 말씀드린 B씨 사례에서도 저는 이 방법을 사용했어요.
월급, 치료비, 기타 비용, 정신적 피해보상 총 네 가지 측면에서 의뢰인이 받은 피해를 어필하면서 민사 소송을 걸었죠.
피해자가 사건 이후부터 퇴사하기 직전까지 작성했던 업무일지와 일기, 지인과 나눈 카톡 등을 정리해서
가해자를 중심으로 한 은근한 따돌림이 정신적으로 얼마나 큰 충격을 줬는지 주장할 수 있었어요.
이쯤 되니 드디어 가해자가 정신을 차렸는지
2천 만원의 세 배에 달하는, 6천 만원으로 합의하자는 의사를 내비치더라고요.
하긴, 까딱 잘못하면 범죄자라고 빨간 줄 그어지는 거니까요.
여기서 잠깐.
합의를 할 때도 ‘타이밍’이 중요하다는 것을 꼭 알아두셔야 해요.
최적의 결과를 내기 위해서는 적절한 타이밍에 합의를 푸쉬해야 한다는 건데요.
제가 민형사 각각 사용하는 전략은 아래와 같아요.
▶ 소송 별 적절한 합의 타이밍 형사만 진행할 경우, ①경찰·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하거나 기소 의견으로 송치하는 순간 가해자는 형사 처벌 가능성을 현실적으로 인식하게 됩니다. 전과 기록이 남아 사회적으로 큰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확실해지는 때이므로 이때가 형사 처벌을 피하기 위한 합의금이 극대화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②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 항소를 할 여지가 보일 때 항소심 초기 단계에서 합의를 시도하기도 합니다. 이미 1심 판결이 나온 상황에서가해자 입장에선 형을 감경시킬 수 있는 절실한 기회이기 때문이죠. 민사만 진행할 경우, 법원이 재산 명시 명령을 내리거나 강제집행이 가시화될 때가 가장 적절한 타이밍입니다. 이때 채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채무 불이행자로 등록될 수 있고 재산 압류가 현실화되면 실질적으로 경제적 손실을 입게 되니까요. |
강력한 복수만을 생각하면 처벌을 포기할 수 없고,
적절한 피해 보상을 생각하면 합의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어요.
그래, 의뢰인의 미래를 생각했을 때 두가지가 모두 필요하다?
그럼 두 마리 토끼 모두 다 ‘잘’ 잡는 방법을 골라야죠.

간혹 몇몇 법조인들이 단순히 사건을 해치워버리려는 경향에 그치는 것 같아 진심으로... 화가 납니다.
어떤 분은 사건 종료와 동시에 연락이 두절되기도 했다더라고요.
앞으로의 새 인생을 나서서 도와주진 못할 망정,
다시 일어설 기회를 빼앗는 거랑 다를 게 전혀 없어 보여요.

제가 늘 피해자의 사건 후 일상까지도 살펴드리는 이유가 바로 이런 거에요.
잘못을 한 사람은 어떻게든 벌을 받게 되어있고, 그 옆엔 꼭 내 편이 되어줄 사람이 있다는 것.
이걸 알려드리고 싶어요.
가해자를 응징하는 것만 중요한 게 아니라,
피해자가 현재 그리고 이후의 삶까지 안정적으로 이어갈 수 있도록 보이지 않는 책임을 지는 것.
이게 진짜 중요한 게 아닐까요?
합의를 할지, 처벌만을 목표로 할지, 혹은 두 가지를 병행할지는 피해자가 스스로 결정할 문제에요.
저는 어떤 선택을 하시든, 가장 유리한 방향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모든 법적 지원을 아끼지 않으려 합니다.
단순히 형사 처벌에만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의뢰인의 미래를 위하여 다각도로 도움을 주는 것이 진정한 성범죄피해자만변호하는 사람의 역할이 아닐까 싶어요.
| 성범죄피해자변호사 이규완